지금(2019년 2월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유일한 컴퓨터는(태블릿 ‘PC’를 제외한다면) 나온지 7년이 다 되어 가는 2012년 6월 출시 13인치 맥북프로(2012Mid)다. 아마 이게 비레티나 맥북 프로로는 마지막 제품일 거다. 지금 세대 맥북에서는 다 사라진 것들이 많이 달려 있다. DVD-rw(지금은 들어내고 그 자리에 HDD를 달아놓았다), 미니디스플레이 포트(요즘건 없더라고), ir리시버(이제는 애플샵 직원도 그 존재를 모르는 ‘리모콘’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물건) 같은 것들이 여기 다 달려 있다.
이걸 살 때에는 물론 최신 노트북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였는데, 2012 맥북 라인업이 업데이트되자마자 샀으니 이 제품의 온라인 구매자로는 순위권 안에 들 수도 있다. 그때도 레티나 맥북 프로가 있었지만 더럽게 비쌌고 나에겐 그 정도의 성능이 필요치 않아서 그냥 맥북프로 라인의 저렴이(?)를 골랐었다. 이미 데스크탑은 게임용을 하나 쓰고 있었고, 예전 회사에서 맥북(화이트, 2007년 모델)을 썼었는데 퇴사 때 반납한 후 노트북의 필요성이 생겨서 산 거였으니 굳이 고성능이 필요 없었던 거지.
아무튼, 사고 나서 잘 쓰다가(사실 이걸로 일은 얼마 안 했다) 신학교를 오게 되었다. 살고 있던 자취방을 정리하고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데탑은 집에 보내고 이 맥북만 들고 왔다. 그때 생각으로는 짐도 줄이고 게임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크게 후회했다. 왜 신학교 오면 게임을 안 할거라고 생각했을까. 어쨌거나 그때부터 나는 다른 윈도우 컴퓨터 없이 이 맥북만 쓰게 되었다. 윈도우가 없는 환경에서 살면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요즘은 환경이 많이 좋아졌고 또 학기중엔 학교 컴퓨터실을 쓰면 되니까 아주 치명적인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하면서 7년을 맥북 하나로 버텨 왔다. 다만 이제 연식이 꽤 된 컴퓨터이다보니 기본적인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이거 쓰는데도 자판이 밀리니 뭐 말 다 했지.(메모 앱이 많이 무거워진듯)
이걸 처음 장만할 때에 비하면 맥북 사용자가 정말 많이 늘었다. 그때 맥은 진짜 쓰는 사람만 쓰는 물건 정도였고 그나마 부트캠프로 윈도우 깔아서 쓰는 사람도 꽤나 많아서 osx깔아서 쓰고 있는 사람 보면 반가울 지경이었다. 물론 그때에도 별다방에는 유난히 맥북이 많았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네이티브로 맥을 쓰는 사람도 많고 어딜 가나 사과가 번쩍이는 노트북 뒷판을 보는 게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요즘 맥은 사과에 불이 안들어오긴 하지만). 뭐 남이 뭘 쓰던 상관없는 일이긴 한데 그래도 (전직)덕후의 마음이란 게 희소성있던 물건이 대중화되면 괜히 샘나고 그런 게 있어서 아쉬운 마음도 조금 들고 한다(왜?).
점점 아무말 대잔치가 되어 가고 있다. 아무튼 오래 쓰다 보니 애착도 생기고 오래 되었음에도 아직까진 쓸만 해서 7년차 노트북임에도 현역으로 잘 써먹고 있다. 그러고보면 아무리 요새 osx가 문제가 많다고 해도 좋은 운영체제이긴 한 것 같다. 예전 윈도우 쓰던 때라면 7년전 모델을 쓰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텐데… 물론 이걸로 최신게임을 돌리거나 하는 건 아니어서 사양에 크게 예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상편집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이니 잘 만든 os인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래서 당장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들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다. 뭐 바꾸면 좋겠지만 워낙에 비싼 물건이기도 하고 지금 쓰는 데에 크나큰 지장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노인학대를 하고 있나 보다.
나이가 들다 보니 점점 빈티지한 것들,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하나 사서 오래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처럼 좀 안 바꾸면 많이 느려져서 꽤 불편한 것들이 아니면 딱히 새로운 것을 장만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짐이 점점 는다. 어쨌거나 살아가면서 이것저것을 계속 사게 되는데, 예전 것들을 버리지는 않으니까. 이럴 바엔 그냥 아무것도 안 사는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지만 이게 또 현대의 소비사회에서 안 사면서 살아간다는 게 참 힘들다. 또 워낙 자잘한 소품들을 좋아해 놔서… 그러다보니 옷장엔 입지도 않는 옷이 한가득이고(SPA브랜드 옷들도 다 튼튼해서 십년씩 입어도 멀쩡하다. 낡은 건 또 빈티지라는 명목으로 남겨 놓고) 서랍에도 온갖 쓰잘데기 없는 물건들이 쌓여 있다. 이런 와중에 7년이나 된 물건이 아직도 제 역할을 해내고 있으니 좀 뿌듯하기도 하고 그렇다. 특히나 노트북 같은 성능에 민감한 기기가 이렇게나 버텨 주니 말이다.
사실 맥북으로 업무를 보는 건 예전부터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았다. 윈도우 쓸 땐 모니터가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수백 수천 행의 엑셀 데이터들을 편집하곤 했었는데, 이상하게 맥북으로만 하면 자연스레 느긋한 한량모드가 되어 업무를 해야 할 상황인데도 웹서핑을 하거나 다른 짓을 하기 일쑤였다. 10여년 맥북을 쓰면서 그 이유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원인은 맥의 마우스 움직임에 있는 것 같다. 맥 마우스 커서에 가속도가 적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맥 운영체제인 osx에서 마우스를 움직이면 커서가 띡 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스르륵 하고 움직인다. 말로 하려니 어렵네. 아무튼 그래놔서 코딱지만한 PPT 오브젝트를 미세하게 조정하거나 하는 데엔 썩 적합치 않다. 스크롤도 관성이 적용되어 있고… 그래서 빠릿빠릿하게 일을 안 하게 되나… 가 아니라 그냥 일을 하기 싫었던 게 아닐까.
어쨌거나 일보단 노는 것에 최적화된 내 맥북이지만 그래도 이걸로 레포트도 많이 쓰고 논문도 하나 쓰고 했으니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이걸로 논문 하나만 더 쓰면 된다. 그때까진 현역으로 잘 버텨주길.(그때되면 바꿀 여유가 되겠지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