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부로 ‘말씀의 봉사자’가 되었다. 제단 위에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강론’의 권한이 생김으로 인해서.
덕분에 그래서 주기적으로 남들에게 ‘고상한’ 말을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내가 다른 이들, 특히 많은 이들 앞에서 교훈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는 거의 없었고, 나 역시 그런 기회를 주도적으로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제 사정이 바뀌었다. 하기 싫어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이젠 반드시 주기적으로 교훈적인(물론 반드시 교훈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부족한 인간인 내가 남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참 영광이고 감격스럽고 그렇다. 이게 싫다는 생각은 (아직까진)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문제는, 내가 그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주제넘게 떠들어댄 그 이야기를 나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더라는 것이다.
지난 주일은 주일학교 강론이 있었다. 그날 복음이 참행복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피안의 행복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좀 벅찬 것 같아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와 우는 이들에게 보여 주시는 관심을 주제로 강론을 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론이 끝나고 미사도 끝나 성당 밖으로 나와 걸어가고 있는데 누가 다가왔다. 신부님이냐고 물어보길래 아니라고 했다. 그 사람은 부제라는 걸 잘 모르는듯 했지만 수단을 입고 있으니 성직자인가보다 했나보다. 아무튼, 그 사람은 어렵게 나한테 사정 이야기를 하며 만원만 달라고 청했다. 천원도 아니고 만원. 하지만 그때 나한테는 지갑이 없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동행하던 사람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따라 들어가 할 일이 있던 나는 좀 난감해졌다. 난색을 표했더니 급했던지 사무실에라도 가서 좀 빌려줄 수 없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성당 직원분들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다. 사적으로 돈을 빌릴 정도로 친하지도 않고.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곤란함을 드러내니 그 사람은 뭐라도 해 줬으면 하는 표정으로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먼저 간 사람들을 얼른 쫒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당장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나는 그 사람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 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를 떠나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갑을 가지고 나와 도와드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방이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그렇게 매정하게 떠나 버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과 몇 분 전에 했던 강론 생각이 떠올랐다. 아, 내가 내 입으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돌보자고 내가 이야기했는데. 불과 몇 분 전에.
괴로웠다. 강론대에 올라 그럴싸한 이야기를 해 놓고 정작 나는 가난한 사람을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해 버렸다. 뭐 물론 사기꾼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만 원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만원을 가진 사람이었고. 내가 내 입으로 떠든 대로라면, 나는 그 사람을 그렇게 떠나면 안 되는 거였다. 아, 나는 강론대에 올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같은 내용으로 하게 될 두 번째 강론을 하기가 두려웠다. 이미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는데. 어린이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거 좀 늦게 간다고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었을 텐데. 들어가서 지갑 좀 가지고 나오는게 그렇게나 귀찮고 어려운 일이었나. 내가 예수님을 모른 척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한 내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론을 새로 쓸 시간은 없었고, 나는 결국 (거짓말이 되어버린) 준비한 강론을 다시 하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그렇게 살기가 참 어렵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사족으로 붙인 채.
좋은 말을 하기는 참 쉽다. 오랜 기간의 학습과 배움으로 우리는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답에 가까운 그럴듯한 말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말이 참말이 되도록 살기는 쉽지 않다. 나도 안 하는 걸 남보고만 하라는 건 위선일 뿐이다. 강론이란 걸 하게 된 지 불과 3주만에, 나는 내 위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좋은 말’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거짓말을 하게 된 것 뿐이지. 그래서 계속 좋은 말은 할 거다. 어차피 이제 그게 내 직분이 되었으니까. 대신, 그 ‘좋은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살아야 할 거다. 나에게 그런 좋은 말을 많은 이들 앞에서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분을, 또 그런 말을 고맙게도 잘 들어 주시는 많은 분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