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화두는 역시나 미투다.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오는 가해사례를 보며 새삼 그 심각함에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를 쫄보로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기도 한다. 나도 충분히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는(예전에는 남성 전체를 이렇게 매도하는 것 자체에 크게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이젠 뭐 아니라고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리고 있다. 워낙 멀끔한 사람들이 가해자로 많이 등장해서) 작금의 상황 속에서 도대체 저들은 간도 크게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질렀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걸 보면, 나는 역시 그런 짓을 저지르기에도 부족한 위인인 것 같다. 뭐 쓸데없이 간만 커서 해악을 끼치는 것보다 쫄보로 사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성폭력 자체의 측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고(어떤 측면으로든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고, 이야기할 거리도 없다. 무슨 이해의 여지가 있는가) 미투 사례 안에서 보여지는 계급적 측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지금 터진 사례들이 대부분 권력자에 의한 것이지 않은가. 피해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는 인물들에 의해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건 남성에 의한 폭력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권력자에 의한 폭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피해자가 여성이라서 성폭력으로 이어진 것이지 ‘아랫사람’전체의 입장에서 봤을 땐 어떤 방식으로든 그 권력자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양반들이 아랫사람들을 존중해주다가 갑자기 여자들한테만 돌변해서 강압적인 관계를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뭐 만약 그렇다면 그것 또한 문제이겠지만, 아무튼 내 생각엔 아랫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가 분명히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성폭력’이라는 문제의 심각성이 희석되는 것 같아 다소 조심스럽지만, 작금의 상황은 분명히 상하관계의 폐해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남녀 간의 사회적 위치도 그 문제적 상하관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크게 보았을 땐 사회 전체적인 상하관계의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 이번 미투 사태들인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착취하고 있는 사회, 애당초 그 윗사람 아랫사람이란 것도 누가 결정해주었는지 모호한 그 관계가 한 인간이 한 인간을 강압하고 착취하는 도구로 쓰인다. 지금 미투를 통해 드러나는 추악한 광경들은 그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착취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들이다. 사실 이 정도로 성적 착취 문제가 커진 것에는 우리가 얼마나 성을 가벼운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도 들어갈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근본적인 문제는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에게 저지르는 착취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외국에 살아보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유난히 다른 나라보다 심한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그 상하관계에 기반한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큰 해악덩어리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꼰대’에 의해 고통받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을’들이 ‘갑’에 의해 절망하고 있는가. 출생년도, 입학 혹은 입대년도, 경력, 계약서상 관계 등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우리는 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위아래를 구분짓고 그 관계 사이에 작용하는 파워를 정당화한다. 물론 구조적으로 그런 관계 안에서 일정한 힘의 작용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필수불가결한 수준을 넘어서는, 힘의 남용이 너무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라고 준 힘이, 권한이 아닐텐데도 많은 윗사람들은 그것을 사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용한다.
개인적인 바람은,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 ‘윗사람에 의한 아랫사람의 착취’ 자체가 조명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바람은 내가 성폭력의 직접적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많지 않아 갖는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다.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입장에서는 당장 직면한 위협부터 해결되어야겠지(성적 위협이 ‘일상적’이란 것을 재확인할 때마다 놀란다. 일부 여성의 문제가 아닌 것이란 게).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내 지위에 기반한 부당한 압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우리 사회 조직 전체에 있다. 이 점은 미투를 통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전반에 강물처럼 흐르는, ‘선배나 윗사람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없어져야 한다. 윗사람에게는 업무지시만 받으면 되었지 커피를 타다 줄 이유는 전혀 없다. 회사에서 일만 하면 되었지 부장님이 주도하는 회식에 무조건 참석해야 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윗사람의 추근덕거림과 그 이상의 행위에 대해 눈을 질끈 감고 견뎌내야 할 이유는 당연히 전혀 없다. 하지만 커피를 타 주지 않으면, 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더러운 손길에 가만히 있지 않으면 피해는 부당한 권력을 행사한 사람이 아니라 당한 사람에게 온다. 법이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해주지도 않고, 설령 법의 보호를 받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당하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애써 ‘이걸 드러내서 받을 피해보다 작은 피해’로 합리화하면서 감내해야만 한다. 그게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는,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사회 안에서 살아남아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건 누가 봐도 문제적인 상황인데, 그게 문제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다. ‘뭐 사회생활 하다보면 윗사람이 좀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뭘 당해도 아랫사람이 문제가 된다. 부디, 이번 운동이 이 상하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까지 이어져 복종관계가 아닌 파트너십에 가까운 상호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