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생각하는 건지, 요즘따라 유난히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예전 내가 회사다닐 땐 한참 바닥에서 구르던 내 친구들&그때의 직장 동료들도 이제는 팀장이니 이사니 하는 으리으리한 직함들을 달고 있으니, 나도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저런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직함을 달고 지금 살아가고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회사를 계속 다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고 있으면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는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한 만큼 오히려 이젠 더 아무렇지 않게 ‘소설’을 써 볼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오래간만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물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지만, 내가 평소에 뭐 의미있는 일을 얼마나 한다고…
2012년, 내가 예신을 안 다니고 직장생활을 관둘 마음 없이 회사를 다녔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새해를 맞이할 당시의 회사는 다닐 수 없었을 거다. 3월에 회사가 문을 닫았으니까. 실업급여를 받게 된 것은 변함이 없었을 거다. 내가 내 손으로 회사 사정에 의한 권고사직을 신고하고 퇴사를 한 덕분에, 나는 2012년 3월부터 2개월간 고용보험공단에서 공돈을 받으며(사실 공돈도 아니었다. 엄청 귀찮은 일이 많아서)신나게 놀러 다녔었다. 뭐 물론 예신을 안했더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었겠지. 당시에는 장기적으로 회사를 다닐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시늉으로 구직활동을 하면서 팀장 혹은 본부장 직함을 달게 된 예전의 상사들을 여럿 만나 명함과 식사대접(?)을 받으며 한량생활을 했었다.
뭐 그때에도 학교 입학준비를 한다고 해서 마냥 놀 수는 없었다. 벌어놓은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니까. 뭔가 일을 하긴 해야 했는데 마침 내 첫 회사에서 같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광고주(!)가 된 친구의 연락으로, 내가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 회사의 프리랜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순수 재직기간으로는 가장 오래 다닌 회사였기도 했고 첫번째 회사의 기억이 너무 좋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흔쾌히 수락을 했다. 단기 계약직 프리랜서로…
아마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이었으면 거기 눌러앉았을 거다. 사실 처음 퇴사할 때도 반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몸담고 있던 팀이 공중분해되면서 팀 막내였던 나 또한 붕 뜨고 말았다. 함께 일하던 윗사람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고, 나는 이름만 전과 같은 팀에서 다른 팀이었던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었다. 이미 팀원이 하나하나 떠나가던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 붕 뜬 분위기의 산물이었던 것 같지만)이 들어 굳이 관둘 이유가 없는 회사를 과감히 나왔다. 물론 그 이후 여기저기 헤메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회사 자체에 대한 기억은 너무 좋은 곳이었기에 프리랜서로나마 재입사를 했었고, 사실은 계속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리고 재입사를 하면서 새로 만난 팀원들 또한 매우 좋은 이들이었다. 대행사란 게 뭐랄까, 갑의 횡포(?)에 시달리다 보면 전우애 같은게 생기기도 하는데 바로 그런 전우애가 생겨 짧은 시간 안에 두루두루 팀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능력들도 있었고… 프리랜서 계약이 끝난 후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술을 한잔 한 뒤 ‘계속 같이 다니자’라고 말씀해주신 분도 있었던 만큼(그분은 안타깝게도 얼마 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었다.
아무튼, 만약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그 마지막 회사(이자 나의 첫 직장)에 계속 다녔었겠지. 뭐 워낙 퇴사를 밥먹듯이 했었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생각으론 꽤 다녔을 것 같다. 내가 좋아했으니까. 물론 추억보정으로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긴 괜찮았다. 내가 몇달 다니다 관둔 여러 곳에 비하면 훨씬.
그렇게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지금은 차장 쯤 되어 있겠지. 2012년 당시 내가 5년차였고 지금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났으니까, 벌써 나도 11년차 직장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차장 혹은 부장급? 에이전시는 직급은 팍팍 올려주니까(4년차때 이미 명함과장도 달아봤었다)그정도는 하고 있지 않을까. 뭐 팀장 정도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니 그때 팀장님들 중 몇은 지금 내나이 정도기도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정말 내가 나이를 많이 먹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내가 무사히 회사를 때려치우지 않고 다녔더라면 그 정도의 직급이 되어 있을 것이고, 셀프브랜딩이 중요한 업계다 보니 내가 10년 전에 생각했던 꿈 정도는 이뤘을 수도 있겠다. 10년 전 꿈이 뭐였냐고? 테드 같은 데서 스피치를 하는 거였다. 큐시트 같은 거 하나 들고 사람들 앞에서, 내 경험과 가치관을 이야기해 주는 게 내 10년 전의 꿈이었다. 언젠가 그 꿈 이야기를 하면서 조만간 강론을 하게 될테니 어쨌거나 꿈은 이루게 되겠다는 소릴 했는데, 아무튼 내가 여기 있지 않고 회사를 다녔더라면 그런거 한번 할 정도의 인간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첨단에 서 있는 업계이니 업계 중진 정도 되면 할 말도 많을 거니까.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했으면 나만의 특성(?)같은것도 생기지 않았을까. 무슨 분야의 전문가라든지, 어떤 프로젝트에 특화되어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 대표 프로젝트 같은 것도 생겨 있겠지. 뭐랄까, 내가 회사를 다닐 때엔 절대 풍길 수 없었던 전문가의 포스 같은 것도 갖출 수 있겠고. 날카로운 질문들도 던질 만한 소양도 있고, 나름대로의 강의 비스무리한 걸 이끌 만한 경험도 쌓았을 거다.
생각을 하다 보면 끝도 없다. 방송 같은데 나올만한, 자유분방한 인테리어의 사무실과 회의실에서 아이디에이션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기기들에 둘러쌓여 ‘비즈니스맨’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겠지. 무슨 잡지나 칼럼 같은데다가 업계 이야기 기고도 하고, 개인 블로그 같은데다가 이야기도 썼겠지. 요즘 브런치가 계속 리젝퇴어서 짜증이 났는데, 아마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까일 일도 없었을 거다. 그들이 좋아하는 분야인 마케팅/IT업계의 10년차 직장인이니 말이다.
막 떠들다 보니 망상이 되어 버렸다. 너무 장밋빛으로만 그렸나… 뭐 상상인데 안좋은 그림 그려서 뭐하나. 아무튼,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하는 생각은 유난히 자주 들고, 11년차 직장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내 모습에 대한 상상도 계속 하게 된다.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이 팍팍한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겠지. 그 점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으로써 감사드릴 수 있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적어도 난 굶어죽을 걱정, 처자식 먹여살릴 걱정은 안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분야, 그리고 내가 스무살 때부터 계속 관심을 가져왔던 분야의 전문가이자 업계 핵심 관계자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나의 또다른 ‘현재’에 대한 상상은, 그것이 이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즐거운 망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더 크고 보람찬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왔지만, 그 ‘전문가’의 모습이 내가 동경하던 모습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게 그 동경하던 ‘전문가 김준휘’의 모습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