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간 계속 ‘집필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글써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글을 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생각이 계속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생각이 너무 머릿속에 꽉 차서일까. 내가 그 생각들을 말로 풀어놓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글로 풀어놓고 싶어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메모장을 열면 뭘 써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리고 오랜 딴짓 후에 겨우 몇 줄 적고 나서는 맘에 안들어 지워버리기를 수십 번, 결국 그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 채 비싼 커피만 마시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전에 비해 글을 쓰는 분량 자체는 꽤 늘었다. 어쨌거나 인문학 계열의 학생으로 살아가다 보면 좋으나싫으나 글을 써야 할 일이 꽤 많고, 또 학보사니 뭐니 해서 글을 쓸 기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전에 <쓰고 싶은 글, 써야 하는 글>에서도 썼듯이 아무리 내가 쓰는 글이 많다고 해도 그게 써야 하는 글인 이상, 그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만다. 글 한번 시원하게 ‘싸지르고’나면 기분도 상쾌(?)하고 스트레스도 풀리는데, 써야 하는 글은 그 정도 상쾌함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정말 잘 썼다고 생각되는 글은 예외다). 그러다보니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입장임에도 계속 집필욕구가 생기는 거고, 그게 급기야는 강박의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집필강박의 이유는 또 있다. 뭔가를 하다가, 혹은 하지 않다가 문득 갑자기 글감이 팍 하고 떠오르는 때가 있다. 그럴 땐 머릿속에 문장이 막 떠오르고 (내 딴에는)문학적 기교까지 갖춘 수려한 글들이 그려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머릿속의 구상이 실제 글로 이어지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꼭 그럴 때만 그런 기가 막히는 글이 떠오르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는 거의 예외없이 그 생각을 글로 옮기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있거나, 어딜 가기 위해서 샤워를 하고 있거나, 노트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 기가 막힌 글감은 꼭 그럴 때 나를 찾아온다. 어디 간단히 메모를 해 놨다가 나중에 그걸 쓰려면, 생각했던 것만큼 글이 술술 풀리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그 기가 막힌 글은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건 아닐까. 실체화될 수 없는 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거나 기가 막힌 글감을 놓쳤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 또 글을 쓰기 위해 몸이 달게 된다.
이건 어쩌면 집필강박이 아니라 ‘SNS강박’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인스타 사진 찍으려고 무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있지 않나. 그 사람들 역시 인스타 강박에 빠져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일종의 그런 글 컨텐츠 발행에 대한 강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인스타 하는 사람들과 나를 1:1로 대비하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이건 되지도 않는 ‘작가적 자존심’의 결과인걸까. 아무튼 나는 그런 부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정도 그런 인스타 하는 사람들과 내가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컨텐츠 제작의 욕구를 ‘소비’로 풀어낼 수 있는 그들과는 달리(인스타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핫한 컨텐츠는 ‘소비’를 전제로 한다)나는 풀어낼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겠지.
뭐 아무튼 지금 이순간에도 집필강박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 글 또한 그 강박의 결과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예전에 챙겨놓은 글감을 살려보다가 포기했고, 결국은 이런 힙하지 않은 자기푸념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이렇듯 내 강박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지도, 해소의 수단이 되지도 못했지만 어쨌거나 커피를 마셨으면 이런 거라도 써야겠다는 또다른 강박의 결과로써 의미가 있다. 근데 진짜 이게 의미가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