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Just Me

평범함에 대한 무지(無知)

*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보 『성신』 211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 산문집 『보다』를 통해 ‘부자’에 대한 놀랄 만한 통찰을 보여 준다. 그는<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진짜 부자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진짜 부자는 비싼 차나 집이 아니라 바로 ‘가난에 대한 천진난만한 무지(無知)’로 자신의 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평범함에 대한 무지’를 통해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자신들의 특별함을 드러낸다. ‘천진난만한 무지’는 비단 부의 차원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발견된다. 귀족들은 서민들의 삶을 모른다. ‘자유’라는 특별한 권리를 누리는 우리들은, 억압받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모르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런 무지가 폭력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했던 마리 앙뜨와네뜨의 천진한 한마디가 가난한 프랑스 국민들을 분노케 하였듯이, 결핍에 무지한 사람들의 별 뜻 없는 한 마디는 너무나도 쉽게 폭력이 된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접하고 분노하는 유명인들의 언행, 그것들 중 상당수는 바로 이런 평범함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들이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들을 했을까? 그들은 그냥 자기에게 익숙한 사실들을 별 뜻 없이 이야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한 마디가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이들은 평범함을 일부러라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평범함에 대한 무지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폭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평범한 이들의 보통 삶을 의식적으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고 경험해야만 한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비록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평범한 이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알고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무례하지 않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살고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들을 얼마나 알고 살아가는가? 당장 우리 나라의 2-30대가 직면해 살아가는 현실에 우리는 관심을 갖고 사는가? 일부의 사람들이 아닌, 우리나라 대다수 서민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담장 너머의 화려함에만 관심을 갖고 정작 그 화려함 속에 숨어 있는 걱정과 고민에 대해서는 모른 채 세상을 안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세상을 모른다. 우리에게는 취업 걱정도 없고, 스펙 걱정도 없다. 알바 걱정도 없고, 생활비 걱정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것은 우리가 신학생으로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렇지만 모든 대학생들이 이런 특권 속에서 사는 건 아니다. 지금도 담장 너머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수많은 걱정들을 안고 살면서, 그것을 잊기 위해 화려함으로 치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걱정에는 무관심한 채 그 걱정을 덮은 화려함에만 관심을 보인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세상의 아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당장은 우리의 삶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아픔에 함께하고, 나아가 훗날 그것을 위로할 수 있는 이들이 되기 위해 당장의 분리된 삶을 산다. 우리가 세상과 떨어져 사는 것은 우리의 할 일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이지 세상의 걱정과 풍파로부터 벗어나 고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니다. 담장 밖으로 눈을 돌려 세상의 아픔을 바라보고 그 아픔에 뛰어들 때 비로소 우리는 슬퍼하는 이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을 위해 하늘 나라의 행복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준휘 | 편집기자(aquinas.kim@catholic.ac.kr)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