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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떠나기 위해 사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런 데가 어디 있냐 싶겠지만 감옥이 그렇고, 병원이 그렇고, 또 군대가 그렇다. 그리고 또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학교도 그런 축에 속하는 것 같다. 떠나기 위해 사는 곳. 시간이 지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곳.

신학교도 그 떠나기 위해 사는 곳에 속하는 걸까? 뭐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거다. 신학교에 있는 신학생들은 누구나 다 졸업해서 신부가 되기를 원해서 여기 있는 거니까. 적어도 지금까지 나는 신학교 생활이 즐거워서 신학교에 있다고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뭐 당연한 것이긴 하다. 그럴려고 신학교를 온 거니까.

그렇긴 한데, 떠나는 것이 목적이긴 한데 떠날 때가 된 지금 입장에서는 너무 떠나기 위해서만 신학교 생활을 해 온 것 같아 조금 아쉬운 것도 있다. 7년이란 기간이 그렇게 짧은 기간도 아닌데, 그 시간 동안 온전히 떠날 날만을 바라보며 산다는 건 좀 아쉽지 않나. 물론 신학교 생활에 안주하자는 건 아니고, 그 시간은 그 나름대로 가치 있는 시간일 텐데 이렇게흘려보내는 데에만 몰두해서 살아간 시간들이 조금 안타깝더라는 거다.

나의 신학원 생활은 행복했을까. 분명히 어느 순간까지는 당연히 그랬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대답에 진실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누군가가 신학교 생활 행복하냐 하고 물으면 그랬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100%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그랬다면 어떻게든 사고가 났을 거다), 예전의 그때처럼 진심을 다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7년 간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평균치로는 겨우 행복 쪽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정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외부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다. 신학교는 변화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수차레 요동쳤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피라미들인 우리는 그 흔들림에 속절없이 부대꼈다. 그건 분명히 나의, 그리고 우리의 행복도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신학교 생활의 불만족이 온전히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 오래 다녔던 건 아닐까. 썩 자랑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이 정도로 오래 소속되어 있었던 곳은 없었다. 아, 이전 대학교가 있긴 하지만 그건 4년의 휴학 기간이 포함된 거니까. 막판에는 거의 학교 학생이란 자각이 없을 정도로 소속감이 없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활동 상태로’ 소속된 곳이 바로 이 신학교인 거다.

너무 오래 다녀서 매너리즘이 온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오랜 기간동안 이 조직에 소속되어 실망스런 모습들을 많이 보았고 그게 내 신학교 생활을 행복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도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특별히 신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현실, 거기에 신학교의 답답한 현실은 양념을 친 것에 불과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현실이 갑갑해도, 심지어 양업관 때는 그것보다 더 암담한 삶(?)을 살면서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뭐가 부족해서 푸념이 일상인 삶이 되어 버린 건지. 그런걸 보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게 이유로 생각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냥 여기에서 지내기만 해도 즐거웠던 시간이 있었다. 옆에 있는 이들이 무슨 짓을 하던 관계없이 내 삶을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근데 떠나는 시점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남들 놀 때 뭔가 하고 있으면 억울했고, 남들 나갈 때 못 나가면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남들과 상관없이 기도하고 남들과 상관없이 책을 읽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요즘에는 ‘형제애’라는 명목 하에 너무 가까워져버린 사람들(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닥 가깝지도 않은 듯 하지만)과 다른 나만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냥 시류에 흘려가면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던 것 같아 안타깝다.

안 좋은 모습은 전염이 빠르다. 그렇게 우리는 안 좋은 모습을 서로에게 전염시켰고,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자각보다는 매너리즘으로 이 신학교 생활을 해 나갔다. 이게 내가 신학교 생활이 늘 즐겁지 않았던 이유인 것 같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떡하나. 끝나는 날이 정해진 신학교 생활과는 달리 앞으로의 생활은 정해진 끝이 없을 텐데. 여기에서 매너리즘에 빠져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걱정이 드는 요즘이다. 물론 나는 열심히 할 생각이고 자신도 있다. 하지만 그건 신학교에 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엔 내가 이렇게 신학교를 떠나고 싶은 곳으로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물론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뭐’라는 희대의 명언처럼, 그냥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부디 이제는 떠나기 위해 사는 일이 없도록. 이 순간이 그 자체로 행복하도록.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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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대회’의 몰락

좋든 싫든 조직에 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에게 특강이나 ‘단합대회’조의 행사는 스트레스의 온상이 된다. 뭐 물론 그런 행사의 근원이 되는 조직문화를 내면화해버린 많은 ‘높으신 분들’이나 높지도 않은데 내면화만 해버린 정신승리자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팀웍이나 개인의 수준향상 등의 목적으로 강제소집되는 강연이나 행사는 수많은 이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일쑤다. 때로는 더욱 고귀한 목적을 위해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소환되기도 한다. 그 비근한 예로는 대한민국 20대 남성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예비군 훈련’이 있겠다.

이런 집단행사가 스트레스의 온상이 되는 이유는 당연하다. 강제로 끌려와야 하니까. 조직 내에서 많은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분의 판단에 의해, 혹은 ‘그냥 좋겠다’싶은 한 마디 때문에 명줄을 건 많은 이들이 자유시간을 반납한 채 어딘가에 모여 의욕없는 행동을 해야 한다. 물론 많은 집단행사는 작당한 수준의 보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간식이나 기념품을 준다든지, 회사의 경우라면 근무시간 인정을 해준다든지. 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는데 왜 참여안해’라는 마인드로 열리는 집단행사는 당근도 없이 내 멘탈에만 사정없이 채찍질을 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뭐 물론 집단행사를 추진하는 분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누가 사람들 괴롭히려고 그런 번거로운 일을 조직하나. 자기 딴에는 조직에 속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 자신의 수고를 들여 일을 추진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좋은 기회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그 일이 얼마나 좋은 것이든,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추진자가 생각하는 대로의 도움은 절대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배움은 다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배워야 할 것, 좋은 것들을 준비해 놓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막 푸쉬를 하는 거다. 딱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지. ‘주입식 교육’. 학습 내용에 관심이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아이들을 앉혀놓은 다음 앞에서 막 떠든다. 그러면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배우기 전에 동기부여는 전혀 없고,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강제성만 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바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고, 우리가 말하는 수재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왜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교실에 앉아 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그건 공부를 잘 해야 하는 이유이지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공부를 잘 하기 위해 학원에 가고, 학교에선 잔다.

사회에서 경험하는 많은 집단행사도 이런 주입식 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다. 개인의 발전이나 조직의 발전. 뭐 그런 것들을 준비해 놓고 그냥 푸쉬를 한다. 정말 우리에게 좋은 거면 어련히 알아서 참석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를 염려해 ‘꼭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높은 분들의 배려 아닌 배려로 인해 우리는 선택권 없이 그 ‘좋은 기회’에 참여하게 된다. 스스로 판단해 참여했다면 충분한 동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그 행사를, 끌려왔기 때문에 어떠한 동기부여나 참여의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억지로 하게 된다. 학교에서 동기부여를 받지 못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조는 것처럼, 행사나 특강에 온 많은 이들도 졸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버린다.

사실 집단행사나 주입식 교육은 모두 우리의 20세기를 지배했던 집단주의의 산물들이다. 충분한 수준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계몽하는 것. 숙련되지 못한 대량의 인력들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것. 이것을 위해 우리는 몇몇의 집단으로 분류되었고 그 집단의 단위로 컨트롤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나친 ‘개인주의’를 우려할 정도로 사람들은 개인화되었고,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실현을 도모할 수 있을 정도로 개인들의 역량도 향상되었다. 과거의 인간들은 소속감이 없이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인간들은 소속감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학생’ 혹은 ‘직장인’이라는 카테고리로 한 인간을 규정할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든 거다. 그런데 이들을 관리하는 방법은 여전히 ‘학생’ 혹은 ‘직장인’의 카테고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는 이들에게 획일화된 방법 하나를 강제하니 그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지.

그래서 지금 시대의 양성은 ‘방법’이 아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스트레스의 근원인 수많은 집단행사는 바로 그 ‘방법’들 중의 하나다(그마저도 충족하지 못하는 집단행사는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하자). 목적은 공감하나 그 시기와 방법에 동의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선택권’이다. 집단행사에 대한 선택권을 주면, 그건 공감하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주어진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그 정도도 동기부여를 못하는 사람은 관둬야지. 하지만 그 정도 동기부여는 된다고 가정하면,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적지 않은 사람이 그 기회를 활용하려 들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그 행사의 효과도 적절하게 발휘될 것이다. 생각보다 스스로 하는 일과 억지로 하는 일의 능률 차이는 크다. 그렇게 적절히 기회를 활용하는 사람은 하고, 아닌 사람은 다른 방법을 찾겠지. 그것도 안하는 사람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야박한 소리이지만 의지가 없는 사람은 딴길 알아봐야지. 이렇게 해야만 양성의 결과가 내면화될 수 있을 것이다. 주입식 교육을 통한 세뇌가 아니라 진짜 내면화. 그거 해야 진짜 오래가는 인재가 될 것 아닌가? 언제까지 존버해서 승리한 개살구들만 내놓을 것이냔 말이다.

* 사실 특정한 배경이 있는데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뭔소리야 싶은 알쏭달쏭한 글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힌트는 다 있으니 들을 귀가 있으면 알아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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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생각하는 건지, 요즘따라 유난히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예전 내가 회사다닐 땐 한참 바닥에서 구르던 내 친구들&그때의 직장 동료들도 이제는 팀장이니 이사니 하는 으리으리한 직함들을 달고 있으니, 나도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저런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직함을 달고 지금 살아가고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회사를 계속 다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고 있으면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는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한 만큼 오히려 이젠 더 아무렇지 않게 ‘소설’을 써 볼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오래간만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물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지만, 내가 평소에 뭐 의미있는 일을 얼마나 한다고…

2012년, 내가 예신을 안 다니고 직장생활을 관둘 마음 없이 회사를 다녔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새해를 맞이할 당시의 회사는 다닐 수 없었을 거다. 3월에 회사가 문을 닫았으니까. 실업급여를 받게 된 것은 변함이 없었을 거다. 내가 내 손으로 회사 사정에 의한 권고사직을 신고하고 퇴사를 한 덕분에, 나는 2012년 3월부터 2개월간 고용보험공단에서 공돈을 받으며(사실 공돈도 아니었다. 엄청 귀찮은 일이 많아서)신나게 놀러 다녔었다. 뭐 물론 예신을 안했더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었겠지. 당시에는 장기적으로 회사를 다닐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시늉으로 구직활동을 하면서 팀장 혹은 본부장 직함을 달게 된 예전의 상사들을 여럿 만나 명함과 식사대접(?)을 받으며 한량생활을 했었다.
뭐 그때에도 학교 입학준비를 한다고 해서 마냥 놀 수는 없었다. 벌어놓은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니까. 뭔가 일을 하긴 해야 했는데 마침 내 첫 회사에서 같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광고주(!)가 된 친구의 연락으로, 내가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 회사의 프리랜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순수 재직기간으로는 가장 오래 다닌 회사였기도 했고 첫번째 회사의 기억이 너무 좋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흔쾌히 수락을 했다. 단기 계약직 프리랜서로…
아마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이었으면 거기 눌러앉았을 거다. 사실 처음 퇴사할 때도 반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몸담고 있던 팀이 공중분해되면서 팀 막내였던 나 또한 붕 뜨고 말았다. 함께 일하던 윗사람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고, 나는 이름만 전과 같은 팀에서 다른 팀이었던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었다. 이미 팀원이 하나하나 떠나가던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 붕 뜬 분위기의 산물이었던 것 같지만)이 들어 굳이 관둘 이유가 없는 회사를 과감히 나왔다. 물론 그 이후 여기저기 헤메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회사 자체에 대한 기억은 너무 좋은 곳이었기에 프리랜서로나마 재입사를 했었고, 사실은 계속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리고 재입사를 하면서 새로 만난 팀원들 또한 매우 좋은 이들이었다. 대행사란 게 뭐랄까, 갑의 횡포(?)에 시달리다 보면 전우애 같은게 생기기도 하는데 바로 그런 전우애가 생겨 짧은 시간 안에 두루두루 팀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능력들도 있었고… 프리랜서 계약이 끝난 후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술을 한잔 한 뒤 ‘계속 같이 다니자’라고 말씀해주신 분도 있었던 만큼(그분은 안타깝게도 얼마 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었다.
아무튼, 만약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그 마지막 회사(이자 나의 첫 직장)에 계속 다녔었겠지. 뭐 워낙 퇴사를 밥먹듯이 했었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생각으론 꽤 다녔을 것 같다. 내가 좋아했으니까. 물론 추억보정으로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긴 괜찮았다. 내가 몇달 다니다 관둔 여러 곳에 비하면 훨씬.
그렇게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지금은 차장 쯤 되어 있겠지. 2012년 당시 내가 5년차였고 지금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났으니까, 벌써 나도 11년차 직장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차장 혹은 부장급? 에이전시는 직급은 팍팍 올려주니까(4년차때 이미 명함과장도 달아봤었다)그정도는 하고 있지 않을까. 뭐 팀장 정도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니 그때 팀장님들 중 몇은 지금 내나이 정도기도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정말 내가 나이를 많이 먹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내가 무사히 회사를 때려치우지 않고 다녔더라면 그 정도의 직급이 되어 있을 것이고, 셀프브랜딩이 중요한 업계다 보니 내가 10년 전에 생각했던 꿈 정도는 이뤘을 수도 있겠다. 10년 전 꿈이 뭐였냐고? 테드 같은 데서 스피치를 하는 거였다. 큐시트 같은 거 하나 들고 사람들 앞에서, 내 경험과 가치관을 이야기해 주는 게 내 10년 전의 꿈이었다. 언젠가 그 꿈 이야기를 하면서 조만간 강론을 하게 될테니 어쨌거나 꿈은 이루게 되겠다는 소릴 했는데, 아무튼 내가 여기 있지 않고 회사를 다녔더라면 그런거 한번 할 정도의 인간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첨단에 서 있는 업계이니 업계 중진 정도 되면 할 말도 많을 거니까.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했으면 나만의 특성(?)같은것도 생기지 않았을까. 무슨 분야의 전문가라든지, 어떤 프로젝트에 특화되어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 대표 프로젝트 같은 것도 생겨 있겠지. 뭐랄까, 내가 회사를 다닐 때엔 절대 풍길 수 없었던 전문가의 포스 같은 것도 갖출 수 있겠고. 날카로운 질문들도 던질 만한 소양도 있고, 나름대로의 강의 비스무리한 걸 이끌 만한 경험도 쌓았을 거다.
생각을 하다 보면 끝도 없다. 방송 같은데 나올만한, 자유분방한 인테리어의 사무실과 회의실에서 아이디에이션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기기들에 둘러쌓여 ‘비즈니스맨’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겠지. 무슨 잡지나 칼럼 같은데다가 업계 이야기 기고도 하고, 개인 블로그 같은데다가 이야기도 썼겠지. 요즘 브런치가 계속 리젝퇴어서 짜증이 났는데, 아마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까일 일도 없었을 거다. 그들이 좋아하는 분야인 마케팅/IT업계의 10년차 직장인이니 말이다.

막 떠들다 보니 망상이 되어 버렸다. 너무 장밋빛으로만 그렸나… 뭐 상상인데 안좋은 그림 그려서 뭐하나. 아무튼,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하는 생각은 유난히 자주 들고, 11년차 직장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내 모습에 대한 상상도 계속 하게 된다.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이 팍팍한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겠지. 그 점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으로써 감사드릴 수 있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적어도 난 굶어죽을 걱정, 처자식 먹여살릴 걱정은 안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분야, 그리고 내가 스무살 때부터 계속 관심을 가져왔던 분야의 전문가이자 업계 핵심 관계자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나의 또다른 ‘현재’에 대한 상상은, 그것이 이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즐거운 망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더 크고 보람찬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왔지만, 그 ‘전문가’의 모습이 내가 동경하던 모습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게 그 동경하던 ‘전문가 김준휘’의 모습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