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미분류

장애인이기 전에 한 인간

본당에서 드리는 새벽 미사에는 장애인들이 몇 분 오신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인데, 두 분은 목발을 짚고 오시는 분이고 한 분은 아예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이다(이분은 뇌성마비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소엔 성당 뒷쪽에 앉아 계셔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영성체할 때는 제대 앞으로 나와야 하니 그때 자주 마주치게 된다.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라 앞으로 나오는 속도나 영성체하는 속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느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목발을 사용하시는 두 분은 나름대로의 스킬(?)이 있어서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영성체를 하고 들어가신다. 다만 휠체어에 앉아계신 분은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 앞까지 와서 영성체를 할 수가 없어서(영성체하는 위치 바로 앞에 턱이 하나 있다) 맨 마지막에 나와서 영성체를 하고 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거나 영성체 행렬이 지체되지는 않는다.

 그분들을 보고 있는 건 참 흥미롭다. 구경거리처럼 느낀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을 깨 주기 때문이다. 으레 우리는 장애인들을 만나면, 뭔가 배려가 필요한 이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배려나 양보가 필요할 때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성체를 하시는 그 분들을 보면, 그들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목발을 짚고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불편한 점이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을 사용하며 이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놓고 앉아 남의 도움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장애인들을 하나같이 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오히려 선의를 가진 이들에게서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아예 관심이 없으니까). 물론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미사에 오시는 그분들처럼 알아서 잘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도움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이들까지도 도매금으로 묶어 취급하는 건 평범한 이들과 같이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그분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란 생각이 든다.

 모든 장애인들을 동정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로 생각하는 건 어쩌면 외형적으로 멀쩡(?)한 나에 비해 그들을 아래로 보는 시각의 반영이 아닐까. 충족된 이(나)와 부족한 이들(장애인)의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 전체를 ‘장애인’이라는 지나치게 큰 카테고리로 범주화시켜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그들을 각자의 개성을 지닌 개별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몰개성적인 이미지로 퉁쳐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막 들기 시작한다. 장애도 그 사람의 한 개성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나도 겉모습만 멀쩡하다 뿐이지 수많은 하자(?)를 갖고 있는 인간인데, 그들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결점들 중 특별히 외형적인 결점을 가진 보통 사람들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무식하게 큰 카테고리로 퉁쳐서 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태도인지를 깨닫게 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