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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감에 대한 깨달음

서울에 산 지 15년이 되어 간다. 15년이라니 참 징그럽다. 15년 전에도 난 어른이었는데 지금도 그냥 어른이구나. 그때는 15년이 지나면 엄청난 사람(어떤 방향으로든)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니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좀 서글프다. 그렇다. 난 나이를 먹은 것이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사람들을 의식하게 된다. 내가 집중력이 없는 건지, 내 시야 안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면 한번씩 그쪽에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문앞 자리는 나에게 쥐약 같은 곳이다.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시선이 그쪽으로 가니까. 뭔가에 집중할 수가 없다. 참… 집중력이 부족한 인간이다. 아. 할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대부분 20대들인 것 같다. 대학로니까 그럴 수도 있고, 만만한 스타벅스니까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대학로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이 스무살 언저리들의 존재를 자주 느끼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종종 나 자신의 위치가 느껴져 묘한 기분이 드는 경우들이 있다.

 1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나는 대학로에 있었다. 이 동네에 살았다는 게 아니라, 여기 왔던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커피를 마셨고, 술집을 갔고, 길거리를 걸어다녔다. 그때에도 분명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을 거다. 그때 나는 내가 그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20대의 내가 20대가 많은 대학로에서 20대처럼 놀고 있었던 거다. 뭐 당연한 소리지만.

 시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대학로 20대들의 틈바구니 안에서 커피집에 앉아 있다. 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기 대학로에 앉아 있고, 내 주변에 20대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때엔 쟤들도 20대 나도 20대였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을 때 뭔가 모를 감정이 느껴진다. 늙어서 서럽다 뭐 그런 것보다는, 시간의 빠름에 대한 놀람 같은 느낌 정도일까. 나는 그대로 있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대로 있었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물론 그때 그들은 나와 같아졌겠지만), 이제 나는 그들과는 구분되는 ‘아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특별히 젊게 산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냥 이정도로 나이 먹었음을 의식하고 살지도 않았다. 15년 전의 나에게 30대 후반이란 까마득한 미래였고, 나와는 큰 관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뻔뻔하게도 나는 그때의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전날 먹은 술이 예전처럼 빨리 깨지 않아도, 뒷목이 뻐근하고 움직이는 게 귀찮아도, 눈이 침침하고 모니터의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도 다 내가 건강관리를 못한 탓이지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열 살 어린 동생들이랑 사니 스스로 늙은이요 아재라고 칭하며 궁상맞은 척을 했지만, 실제로 내가 늙었다고 생각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근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기회로 내 나이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진짜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예전엔 이 젊고 예쁜(혹은 멋진) 이들과 다른 점이라고는 ‘예쁘거나 멋지지 않음’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떠오르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래,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근데 아직도 이렇게 애처럼 살고 있다니, 적어도 이쯤 되면 조금 더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덧.서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의식의 흐름대로 늙음 한탄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다 창문 바라보는 1인석을 많이 마련해놓지 않은 스타벅스 대명거리점의 탓이다. 괜히 홀 한가운데 앉아서 사람들 보다가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버리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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