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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혹은 가난한 이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때문인지 유난히 길거리 헌터(?)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잦다. 아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길거리 헌터의 카테고리는 다 당해본 것 같다. 도를 아십니까는 기본이고, 그리스도교 계열의 가두선교나 각종 사이비 종교의 포교활동, 설문지나 모금(사실 이것들도 상당수는 다 사이비로 이어진다) 등에도 안 걸린 적이 없다. 이쯤 되니 이젠 길거리에서 누가 툭 치기만 해도 아 또 왔구나 싶은 촉이 올 정도다.

뭐 길거리에서 누굴 만나든 이제 초연해질 정도가 되었지만, 요근래 갑자기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부류의 길거리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돈을 원하는 이들’이다. 그냥 ‘걸인’이라고 해도 되지만 사실 길바닥에 깡통 하나 깔아놓은 전형적인 걸인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교통비 조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걸인’이라는 특정 단어로 한정할 수는 없는 것이 이 부류의 사람들이다. 물론 대부분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걸인에 해당하지만.

아무튼 이 ‘돈을 원하는 사람’이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는데, 이유인 즉슨 저번에 나를 꽤 괴롭게 했던 <언행 불일치> 사건 때문이다. 사실 이전엔 이런 사람들은 그냥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서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한번 직장인 시절에 길거리에서 생판 모르는 이에게 오만 원이란 거금을 준 사건이 있었는데, 사실 뭐 그때야 한참 영적으로 맑았던 시절이었고 또 돈도 벌고 있었으니 적선하는 셈 치고 준 거였다. 그걸 페북에 올렸더니 호구로 몰려 한동안 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말이다. 뭐 그럴 때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내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또 괜히 사기꾼들한테 돈 쥐어주기 싫다는 생각도 들고 귀찮기도 하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도 쿨하게 무시했다. 하지만…

지난 번 그 사건 이후 길거리에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모든 ‘돈을 요구하는 이들’을 도매금으로 사기꾼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중에 최소한 한 명은 정말 돈이 급해서 어렵게 용기를 낸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아니, 설령 그들이 사기꾼이라고 해도 내 돈 만원 이 만원이 필요한 ‘가난한 이’라는 점은 맞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는 것이 아닐까. 뭐 이런 생각들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으로 지나가다 만나는 모든 ‘청하는 이들’에게 돈을 줄 정도로 내가 여유롭지도 않을 뿐더러, 귀찮음과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 덕분에라도 나는 앞으로도 돈을 선뜻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사기꾼 취급해서, 나쁜 놈들이니까 저들한테 돈을 주는 건 나쁜 일이야 하고 생각하며 합리화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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