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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욕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우리 아버지의 직업은 ‘화가’다. 그림 그리는. 뭐 먹고살기 바빠 어떨 땐 취미로 그림 하는 사람들보다 더 그림을 멀리 하고 사시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본업은 ‘화가’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내가 아직 가능태에 불과하던 시절에는 꽤 전도유망한 미술학도셨다고 한다. 풍경을 자주 그리시다 보니 내 취향과는 다소 맞지 않지만(나는 조금 더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작품을 보면 나 같은 똥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며 화가가 맞긴 맞구나(아버지 죄송합니다ㅠㅠ)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덕에, 나도 예술적인 센스는 조금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걸 뭐 내 입으로 이러쿵저러쿵하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남들보다는 좀 더 예술적 기질이 있긴 한 것 같긴 하다. 아버지가 내가 어랬을 때 그림그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기 때문에(소질이 없다고 일갈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난하게 살거 같아 그러셨던 것 같다) 스킬이 없어서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재주는 없지만, 어쨌거나 머릿속에는 창조적인 생각이 들어있고 여건이 된다면 그게 결과물로 나타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하시던 미술학원이라도 다녔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학원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뭐 그거야 이미 수십년 전에 물 건너간 거니까… 포토샵으로 깨작거리고 있다 보면 나도 드로잉을 좀 할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타고난 피와는 달리 수련을 안해서인지 원래 재능이 없는건지 아무튼 중학교때 만화 그린다고 깝죽대던 시절 이상으로 나아지지 않아 좀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다.
 아, 원래 하려던 이야긴 이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드로잉 스킬은 물려받지 못했지만(잠재능력이 있을지도) 예술적 센스는 물려받은 덕분에 뭔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면서 산다. 뭐 그게 아트웍일때도 있고, 글일 때도 있고, 가끔은 음악일 때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대학교 때 포토샵과 영상을 좀 배워서(둘다 독학이어서 고급기능은 모른다) 그 둘은 좀 만지기도 하고 덕분에 그걸로 밥벌이도 좀 했는데 그렇다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뭐 남의 거 수정이나 좀 할 줄 알았지… 글은 그래도 인정받은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인데, 그것도 큰 상을 타거나 한게 아니라 그냥 소소하게 논술 점수 좀 잘 맞고 교내/영내(군대) 백일장 같은거로 수상 몇 번 하고 그정도여서 내세울만한 게 1도 없다. 브런치도 까이고… 아무튼 그래도 글은 키보드만 두드리면 쓸 수 있는 거니까 그래도 수월하게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분야이긴 한데 사실 내가 글을 진짜 잘 쓰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걸로 밥벌어먹겠냐 하면 그 수준도 아닌것 같고 해서 저는 글쓰기가 재능입니다 하기엔 좀 쑥스럽고 그렇다.
 어쨌거나 아트웍이나 글은 그래도 아~주 못 하는건 아니라서 그냥저냥 하면서 내 ‘예술적 욕구(?)’를 충족하곤 하는데, 음악은 그렇지가 않다.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젬병이었고 지금도 전혀 못한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잠깐 다녔는데 바이엘을 하다가 피아노 학원이 이사를 가버려 끊은 이후로 나는 어떤 악기도 배우거나 다루지 못했다. 아, 고등학교 때 풍물동아리를 했지만 뭐 그거야 활용성이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고 음악적 재능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음표를 못 읽는데 뭐. 물론 음악 못한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음악 분야에도 그놈의 ‘예술적 욕구’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할 줄 아는게 쥐뿔도 없는데 왜 음악은 만들어보고 싶은 건지. 세상이 좋아져서 나같은 음악고자도 다룰 수 있는 개러지밴드 같은 훌륭한 프로그램도 있고 여기저기에 악기들도 널려 있지만, 다른건 투닥투닥 하다보면 결과물이 나오던데 음악만큼은 도대체 그게 잘 안 된다. 내가 기준이 너무 높나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럴듯하긴 해야지. 근데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도 잘 안되니 이게 참 답답할 노릇이다.
 글쎄, 음악과는 일절 관련 없는 사람이 왜 음악 못 만드는걸로 스트레스를 받나 싶겠지만(사실 스트레스까진 아니고) 나도 좀 잘했으면 좋겠다 싶은 열망이 있고 음악 잘 하는 사람 보면 부럽고 하는게 아무리 봐도 욕심 같은 내 심정이다. 뭐 음악만 그런 건 아니지만 음악은 특별히 좀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그럼 왜 안 하나? 그러게. 끈기가 없어서인지 시간이 없어서인지 아무튼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으며(코드 몇 개 잡을 줄 아는 걸로 ‘기타를 칠 줄 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렇게 될 것 같다.
 결국 의식의 흐름대로 아스트랄한 글이 되어 버렸지만, 아무튼 창작욕이란 건 괴롭다. 내가 그 창작욕을 충족시켜 주지 못함에도 그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걸 충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나는 이 글을 쓰기 21시간 전에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나왔다). 이게 다 재능 없이 센스만 물려준 아버지가 문제… 가 아니고 아무튼 앞으로는 이 창작욕을 좀 풀어내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프로의 세계로 넘어 오면서 나는 아마추어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게 되어 버렸고(그걸로 밥벌이는 불가능하고 밥벌이와 무관한 일은 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나마도 학교에 오면서 거의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물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해내야 하겠지만 가끔은 내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여유가 있었으면 싶다. 어차피 이젠 그걸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지는 않을 거니까, 철저히 취미가 되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욕심부려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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