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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잘 모른다는 사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내 생각과 행동들을 다 ‘관찰’하고 있는 것이 오직 나뿐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질문을 살짝 바꿔, 나는 나를 다 알고 있을까? 아니, 나는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기는 한 걸까? 너무 당연하게 나는 나를 잘 알지! 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요 몇년간 이어진 생각들을 통해 나는 나를 그렇게 잘 알고 있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스스로 나에 대한 생각들을 꽤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행동과 생각들에 대한 내부적인 피드백(반성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걸 ‘성찰’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아 내가 왜그랬지’ 정도의)도 하고 있으며,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며 내 모습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기평가를 하기도 한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며, 어떤 것이 바람직한 모습과 방향일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떄로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문제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 양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특히 스스로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을 것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하면서(생각을 했다면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들은 점점 확신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이렇게 ‘충분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내 모습이 내가 ‘창조해낸’ 더 이상적인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의 본질 바깥에 있는 껍데기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일종의 ‘레이어’처럼, 내 본모습 위에 무언가를 얹어놓고 그것까지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이전까지 내가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또 내보여 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의심이 생겨났다. 나는 과연 솔직한 사람일까. 다른 이에게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솔직한 인간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내가 솔직하게 내놓았다고 생각했던 그 모습이 사실은 ‘레이어’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 자신의 솔직함 자체에 의심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때 내 표면적인 경험(=과거)을 제외한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점에서 좀 더 강해진다.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많은 것을 그냥 void로 남겨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많은 부분이, 나 자신도 접근할 수 없도록 제한이 걸린 채 나머지 부분만을 보며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예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창조된 이미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물론 그것이 본질에 기반하더라도). 그런 생각들을 계속하다보니, 이건 뭐 데카르트도 아니고 자꾸 극단적인 방향으로 의심이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정도까지 내가 허상의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 정도는 있다. 뭐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여기까지 오고 만 거지.

 아무튼, 내가 들여다보고 내가 또 내보여주는 나의 모습이 생각 이상으로 제한된 일부분에 불과하고 나는 사실 나를 잘 모른다는 것 자체는 확실한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내가 모른다면, 남의 도움을 받아야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상담도 하고 그러나보다. 하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제한적으로만 드러낸다면, 내가 드러내는 만큼만을 볼 수 있는 남이 나보다 많은 ‘나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까. 뭐 그런 것이 심리학이고 정신의학인 것 같긴 하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썩 미덥지는 않다. 나도 모르는 걸 남이 어떻게 알아 하는 생각과 함께, 결국 뭔가를 알아낸다고 해도 그건 그냥 추론에 불과한 거잖아 하는 생각이 그런 학문들에 대한 신뢰를 가로막는다. 사실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을 굳이 알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인 요인이든 내부적인 동기부여든 내가 모르는 내 모습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걸 할 수 있도록 해 주는건 나 이외의 어떤 것(사람이든 학문이든)일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내 생각에 그건 단순한 ‘넛지’이상의 것은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알아가야 하는 역할은 나 자신의 몫이겠지.

여담.
사이버스페이스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이런 글을 싸지르게 되었다. 나중에는 ‘가상인격’같은 것도 실현되지 않을까? 데이터형과 AI만으로 구현된, 실체 없이 인간을 ‘에뮬레이트’하는 인격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럼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 가상의 인격을 실제라고 생각하면서 소통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AI의 발전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지만, 만약 이렇게 인간의 (물리적이 아닌)외형적인 모습들을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에뮬레이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이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사실 정리하면 간단한 이야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생각했던 여러가지 것들이겠지. 그런 점에서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 글은 그냥 글을 쓰는 동안 했던 생각의 ‘나머지’에 불과할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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