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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大)작가의 악필

난 악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갈수록 글씨체가 구려지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도 컴퓨터만 써 대서 글씨쓰기 능력이 쇠퇴하는 걸까. 가끔은 이걸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먹지 싶을 정도로 내 기준엔 개발새발 써서 주는데도 글씨 잘쓴다는 소리를 듣거나 적어도 악필 소리는 안 들으니, 도대체 얼마나 못 싸야 악필이라고 욕을 먹는건가 싶을 때가 있다. 악필인 사람들이 주변에 있긴 있으나, 좀 안 예쁠 뿐이지 알아먹는덴 지장 없을 정도던데. 아닌가?

 갑자기 악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연필쓰기를 하면서 글씨체가 변해가는 걸 보고 있는 중에 연필로 원고쓰는 소설가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나서이다.(의식의 흐름이…) 김훈이었나. 아무튼 요즘같은 시대에 아직도 원고지에 원고를 쓰다니 작가의 로망인가 싶기도 하고 장인정신 같은것도 느껴지도 하긴 하지만 그걸 받아보는 편집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하는 생각도 떠오르고 막 그렇다.(역시 의식의 흐름이…) 뭐 대(大)작가의 친필 원고를 받아서 영광입니다 하는 생각일까 아니면 이거 또 언제 보고 언제 치지 하는 직장인 마인드일까. 뚝 잘라서 한쪽은 아니겠지. 그래도 마냥 영광스럽게 그 원고를 타이핑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 본다. 일은 일이니까.

 근데 진짜 그렇게 옮기는 글이 악필이면 얼마나 힘들까. 타이핑하는데 ‘해독’이 필요한 수준이라면 얼마나 골치아플까. 옮겨야 하는 글이 어중이떠중이의 글도 아니고 무려 대작가의 글인데 악필 때문에 잘못 읽어서 오타라도 나면(사실 이건 오타가 아니라 오독이라고 봐야겠지만) 이건 또 무슨 부담인가. 뭐 악필까지는 아니더라도, 원고지로는 수백 수천장 써나가는 게 소설이니 글씨가 마냥 정자체는 아닐거고 그러다 보면 날라가서 아리까리한 글씨도 생길 만 한데 그런건 또 어떻게 하나. 괜히 지레짐작으로 때려맞췄다가,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써넣은 표현을 밍숭맹숭한 걸로 바꿔넣어 버리면 어떡하나. 뭐 이런 쥐가 고양이 생각해 주는 것 같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금세 연필이 닳아 또 날아가는 글씨가 되어 버렸다(이 글은 연필로 공책에 쓴 걸 옮긴 글입니다). 근데 진짜로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친필 원고는 편집자가 일일이 다 타이핑하는 걸까, 아니면 일단 손으로 쓴 다음에 작가가 직접 파일로 만들어 주는 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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