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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중독

활자중독이란 요상한 용어(?)가 있다. 뭐 정식 병명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신조어 같은 걸로 추정되는데, 그렇다 보니 어떤 게 활자중독인지 정의하는 것도 제각각인 것 같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활자중독이란 단어를 듣고 어떤 이들은 ‘아 내가 바로 이 활자중독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런 인간들 중의 한 명이다.
이게 진단을 받는 병 같은게 아니라서, 내가 ‘활자중독자’라는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나면 그때부터 그 병명(?)에 걸맞는 증상(??)들을 찾아내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음료수 라벨을 읽는 습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는데, 나는 음료수를 마시다가 별로 할 게 없으면 그 음료 캔에 써있는 글자들을 전부 읽는 습관이 있다. 그걸 대체 왜 읽냐고? 모른다. 모르니까 중독이지. 뭐 물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정말 갈증이 났거나 하는 경우에 그걸 읽고 앉아있지는 않지. 그렇지만 뭐 그냥 휴식을 하거나 하면서 음료수를 마실 때, 아니면 사람들과 앉아있지만 별로 할 말이 없을 때 나는 습관적으로 음료 캔의 라벨을 읽는다. 
사실 내가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안 지가 얼마 안 되었다. 그냥 읽고 있더라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음료수의 성분이나 공장 위치 따위를 기억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읽는 거다. 내가 이런 습관이 있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니들도 그러는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십중팔구 미친놈 취급을 할 것 같아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도 이걸 왜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습관을 인식한 이후부터는 그걸 읽고 있다가도 의식을 하게 되어 버려서, 순수한 의도(?)로 그 짓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활자중독인가? 뭐 활자중독이라고 하면 책을 닥치는 대로 읽거나 신문을 빠짐없이 읽거나 하는 따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뭐 꼭 그런것 같지는 않다. 책을 평균보단 많이 읽고 있긴 한 것 같지만, 독서가로 인식될 만큼은 아니다. 신문 역시 읽으려고 가져다 놓고 폐지함으로 직행하는 것들이 수두룩한 걸 보면 그런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뭐 물론 인터넷 따위에서 글을 많이 읽긴 한다. 근데 그건 남들도 다 그런거 아닌가? 심심하면 인터넷으로 뉴스 읽고, 블로그 읽고, 시시콜콜한 게시물들 읽고. 그런것들이 활자중독자의 증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내 특이증상(?)은 오직 그 음료수 라벨을 읽는다는 그것 뿐인 것 같기도 하다. 아, 설명서 다 읽는것도 있겠다. 나는 설명서 안 읽고 버리는 사람이 그 정도로 많은줄 몰랐다. 하지만 설명서 읽는 건 활자중독이어서가 아니라 새로 장만한 물건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서인것 같은데.

뭐 아무튼 글자 참 열심히 읽는다. 하지만 머리가 복잡해져서인지, 아니면 이제 기억력과 집중력이 감퇴되어서인지 읽은 것 중의 상당수는 그냥 ‘읽었다’는 것 이상의 기억으로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이건 어쩌면 영양가 없는 텍스트를 대량으로 공급해주는 스마트폰의 영향은 아닐까? 쿠키 컨텐츠 위주의 읽기가 생활화되다 보니 텍스트 자체에 대한 저장이 줄어들어 버린 건 아닐까? 아직도 글을 읽는 건 즐겁지만, 열심히 읽은 것들이 영 생각이 안 나고 입안에서 맴돌 때엔 조금 짜증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벌써 이렇게 깜박깜박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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