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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빡침의 역사

독립하고 돈을 번 이후 내기 시작한 여러 세금과 공과금 중,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이 바로 건강보험이다. 다른 것들은 그다지 부담이 크지 않거나(주민세 등), 낼만한 돈을 내는 것이거나(통신비), 그도 아니면 사실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잘 모르는 경우(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 나가던 것들)가 대부분인데, 유독 건강보험만큼은 주기적으로 사고(?)를 치면서 내 혈압을 오르게 만든다.

사실 건강보험이 처음부터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직장인 건강보험 가입자가 되면서 내 명의로 된 보험증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때야 뭐 돈도 벌던 상황이었고 그나마 월급에서 미리 떼었기 때문에 열을 받고 자시고 할 일이 없었다. 명세서에 찍히긴 했었을텐데 얼마였는지 별로 관심도 없었다.
이게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회사를 때려치고 지역가입자로 편입된 이후부터였다. 퇴사와 함께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전환이 되었는데, 그전까지 신경도 쓰지 않던 건강보험료를 직접 내게 되면서 좀 열을 받기 시작했다. 일년에 병원 한두번 갈까말까 한데 몇만원씩 내는게 굉장히 아까웠던 것이다. 그래도 그땐 아직 벌어놓은 돈이 꽤 있을 때였고 덕분에 재분배 효과 같은 것도 생각할 여유도 있었기 때문에 좀 배가 아프긴 했지만 고분고분 냈었다. 뭐 또 얼마 안 있어서 4대보험 혜택을 다시 받게 되기도 했고.

본격적인 문제는 내가 일을 완전히 관두고 학교를 다시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전에 발생한 문제는 그래도 일하는 도중 쉬면서 발생하는 문제였는데, 이제는 아예 몇년간 돈을 벌 가망이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당장 벌어 놓은 돈이 꽤 있긴 했지만 이제는 잔고가 채워질 가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건강보험을 고분고분 낼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첫 학기를 지내고 하반기가 되면서 보험료가 조정되었는데 이게 무주택 무소득자의 액수가 아니었다. 산정기준을 봤더니 근로소득이 잡혀 있더라. 이게 뭔일인가 해서 알아봤더니 근로소득은 이전 원천징수를 기준으로 산정된다고 한다. 작년도 아니고 무려 재작년 소득을! 그땐 한참 일할때라 원천징수 소득이 꽤 있었는데, 이게 땡전 한푼 못 버는 지금에서야 반영되어 보험료를 올리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이게 뭔 밥통같은 시스템이냐! 결국 내가 스스로 재조정을 신청해야 했는데, 내가 2년전 그 직장에서 돈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증명을 해야 했다. 덕분에 난 2년전 퇴직한 곳에 가서 ‘해촉증명서’를 떼어 와야 했다. 일단 보험료를 높게 질러 놓고 그게 아니면 직접 조정하라는 이 말도 안되는 건강보험 체계에 분노했지만, 아쉬운 건 내쪽이었기에 일단 시키는 대로 다 해서 보험료 조정을 받았다.
‘해촉증명서’를 통한 보험료 조정은 2년을 해야 했다. 언급했듯이 재작년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보험료 시스템상, 일을 한 2년 후에도 나는 여전히 재직상태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2년차의 업무처리는 조금 더 번거롭긴 했지만(돈 받은데가 더 많았다) 뭐 한번 해본 거니까. 귀찮긴 했지만 한번 해본거라 수월하게 했다. 그리고 난 이제 진짜 끝인줄 알았다. 더이상은 보험료 조정으로 쇼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3학년이 되었고, 이제 진짜 돈을 번지 2년이 지나서 완전한 서류상 무소득자가 되었다. 그래서 보험료 조정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메일을 확인하다가 보험료가 무려 3만원돈이 나온 걸 확인했다. 이건 또 뭔 날벼락이냐. 보험료 산정내역을 확인해 봤더니 난데없이 내가 몇천만원짜리 전세집에 살고 있는 걸로 되어있는 걸 발견했다. 공짜로 얹혀산지 3년이 되었는데 전세집이라니!! 당장 공단 민원실에 찾아갔다. 담당자는 확인을 해 보더니 그게 내역이 없어서 자동으로 주거비가 책정된 거라는 대답을 해 줬다. 이런 개뼉다구 같은 경우가 어딨냐! 화가 치밀었지만 다행히 담당자분이 굉장히 친절했다. 이게 전산상으로 되는거라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무상거주확인서’라는 서류를 작성해 주셨다. 내가 공짜로 얹혀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라는 것이지. 이걸 왜 내가 증명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친절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드디어! 보험료가 최저액수로 조정되었다.

무상거주확인서를 받은 후 2년간은 매우 평온하게 지나갔다. 이젠 진짜 소득도 없었고, 무상거주도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때 담당자분이 이 확인서가 2년간 유효하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지만 그건 뭐 까맣게 잊은 채 평화로이 2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올 9월에 메일을 확인하다가 충격적인 보험료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까먹었던 새에 내 보험료가 역대 최고액을 경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 확인서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는 사실이 기억났지만 이미 학기가 시작되어 업무를 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외출을 신청해서 일을 보러 갔다. 처음 확인서를 받을 때 워낙 수월하게 일이 처리되어 부담없이 민원실에 방문했다. 근데… 나는 그때 그 친절했던 담당자분이 ‘직권’으로 일을 처리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상거주 확인을 위해서는 거주지의 등기부등본이나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제출하란다. 내가 어디서 명동성당 등기부등본을 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저번엔 그냥 해주셨는데요…’라고 했다가 ‘그건 그 사람이 해준 거고요’라는 차가운 대답을 들어야 했다.
 설명을 듣긴 들었는데, 놀라운 건 그 무상거주 확인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단 등기부등본이긴 한데, 등본을 뗄 수 없는 경우에는 해당 기관 책임자의 신분증 사본이나 뭐 그런걸로도 한다는 거였다(개신교 교회가 그렇게 많이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책임자가 나와 있는 등본은 안되냐고 했더니 그건 또 안된단다. 기준이 뭐야 도대체! 아무튼 안된다니까 일단 돌아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답이 안나온다. 뭘 누구한테 이야기해서 어떻게 받아야 하나…

아무튼 이놈의 건강보험, 특히 지역가입자 보험은 도대체 뭘 이렇게 만들어놓은건지 모르겠다. 일단 월세가 월세액*100으로 재산에 산정되는 것부터 열받는다. 이게 부동산 중개료 산정하는 공식인 것 같은데, 어떻게 매달 지출하는 월세가 내 재산액수가 될 수 있다는 거냐! 내가 500에 25만원짜리 월세를 살면, 이 25만원이 2500만원짜리 ‘재산’으로 계산되어 나는 졸지에 전세 3000짜리 ‘재산’을 가진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계산방법이 어딨냐.
그것보다 열받는 건, 이 재산 산정과정이 ‘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내가 월세나 전세 거주자가 아니라서 전산에 뜨는 게 없으면, 건강보험은 내가 이정도 전세집에 산다고 ‘예측’하여 보험료를 산정한다. 아니 데이터가 없으면 재산이 없다고 간주하는 게 정상 아닌가? 일단 때려놓고 억울하면 증명하라는 식으로 짜여진 체계는 진짜 말도 안된다.
어쨌거나 덕분에 나는 보험료를 조정하기 위해 이번 년도에도 발품을 팔아야 했고, 더 팔아야 할 것 같다. 절대 보험료를 내기 싫은 게 아니다. 낼건 내고 살아야지. 다만 좀 더 내 상황에 맞는, 납득할만한 액수의 보험료를 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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