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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기상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할 일이지만, 난 벌써 43개월째 꼬박꼬박 오전 6시에 기상하고 있다. 물론 가끔 ‘긴밤’의 은혜(?)를 입고 30분이나 혹은 몇 시간 정도 푹 잔 적이 있긴 한데, 그래도 1년 중 거의 90% 이상은 6시에 꼬박꼬박 일어나는 생활을 3년 반째 해오고 있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내가 지난 30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센세이션한 일이다. 서른둘 이전까지의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내가 올빼미형으로 살아왔는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였다) 저학년 때에도 늦게 잔 기억이 있는걸 보니 태생이 올빼미였나 보다. 그땐 아버지 직장이 늦게 끝나던 때라 다른 집보다 저녁시간이 한참 늦었다. 우리집은 항상 9시 뉴스데스크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다른 집은 6-7시에 저녁을 먹는다는 걸 알게 되고 난 후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저녁을 늦게 먹다보니 자연히 자는 시간도 늦어졌고, 뭐 그러다보니 일어나는 시간도 늦어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었는지에 대해서는 가물가물하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분명히! 늦게 잤다. 그땐 야자가 있던 때였고 3년 내내 대부분 오후 9시~10시 정도에 끝났다. 집에 오면 10시가 넘었는데, 나는 절대 집에 오자마자 자는 법이 없었다. 드라마와 11시 토크쇼(그땐 참 토크쇼를 많이 했다)를 다 보고 부모님이 자러 들어가시면 플스를 켰다. 중3-고1 넘어가던 시기에 1년간(!) 모은 돈으로 플스를 장만했었는데, 막상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그걸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열두시 넘어서 플스를 켰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힐 일이다. 그때 하던 게임들이 전부 일본식 RPG같은거라 플레이 시간이 수십~수백시간에 달했는데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게임 엔딩을 수십 개를 봤다. 도대체 게임을 얼마나 한거야… 아무튼 그때 나는 그 게임들을 하려고 밤 열두시부터 새벽 두세시까지 거의 매일 깨어 있었다. 가끔 부모님한테 걸리기도 했지만 뭐 그렇다고 안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러다보면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다. 등교가 7시 30분까지였는데, 6시 반에 엄마한테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 겨우 일어나 학교에 갔다. 그땐 진짜 만원버스에서 버스 손잡이에 기대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아침엔 정말 비몽사몽이었다. 세시에 자서 여섯시 반에 일어났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렇게 고등학교를 보내고(지금 생각해도 대학교 간 게 용하다), 마침내 부모님의 품을 떠나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뭐… 거의 낮밤이 바뀐 생활들이 이어졌다. 새벽 네시 전에 자는 법이 없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는 잠을 일찍 잘 수가 없었다. 밤 열두시가 기숙사에서는 대낮에 가까웠으니까. 술을 마시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예 외박계를 써 놓고 밤새 술을 마시기가 일쑤였고, 얌전히 방에 있더라도 열두시면 한참 게임에 열중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거기다가 누가 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게임을 하다 보면 밤을 꼴딱 새기 일쑤였다. 새벽 네 시는 기본이었고, 여섯 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드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그렇게 살다보면 일어나는 시간이 빠를 수가 없었다. 기숙사에선 여덟 시에 아침밥을 줬는데, 단 한 번도 내 의지로 그 밥을 먹은 적이 없다. 부지런한 친구가 깨워주거나 갑자기 방장 형이 방 사람들을 다 깨워서 밥을 먹으러 가거나 해서 일어난 적은 있었지만, 절대 8시에 자력으로 일어날 수는 없었다. 8시에 못 일어나면, 쭉 자는 거였다. 1교시가 9시 30분 시작이긴 했는데, 나는 4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1교시 수업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한 번도 없는줄 알고 찾아봤더니 있긴 있더라). 거기다가 주4일 수업인 경우도 많아서, 굳이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날이 많았다. 뭐 그런 날은 쭉 자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는 뭐 짤없이 6시(동절기엔 7시) 기상… 일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난 해안경계 부대에서 2년여간 복무를 했는데 거긴 밤에 근무를 서고 아침에 자는 그런 부대였다. 늦게 자는 걸 넘어서 아예 밤을 새는 부대였던 거다. 근무표에 따라 생활패턴이 바뀌기는 했지만, 한참 심할 때엔 3~4개월간 ‘오후’ 6시 30분에 출근해 해질때 퇴근하는 극악의 스케줄을 소화하기도 했다. 즉, 결국 난 군대 가서도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제대 후 복학했더니, 1학년 때의 그 올빼미 생활이 이어졌다. 거기다가 고학년이 되면서 팀별 과제가 많아졌는데,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새벽까지 깨어 있게 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야근이었던 거지. 그렇게 야근(?)을 하며, 혹은 게임을 하며 내 대학교 생활의 대부분은 늦게 자고 늦게 자는 생활로 채워졌다.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직장생활? 뭐 야근이 8할이었다. 회사에서 야근수당 1위를 찍은 적도 있으니(야근으로 한달 만근을 채웠다) 말 다했다. 과제지옥이었던 3~4학년을 지나면서 야근엔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직장에서의 야근은 그야말로 하드코어했다. 과제야 뭐 며칠만 바짝 하면 되었지만 직장생활은 말 그대로 ‘생활’이었기에, 야근은 그냥 일상이 되었다. 매번 집에 열두시 넘어서 들어가니, 당연히 아침 기상시간은 빠를 수가 없었다. 그나마 회사가 다 별로 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8시에 겨우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을 하는 생활들이었다(그나마도 가끔 늦었다). 날을 새서 잠을 안 자고 6시에 깨어 있었던 적은 있지만, 6시에 ‘기상’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학교를 왔고 평생 처음으로 6시 기상이 ‘일상’이 되었다. 난 아직도 내가 6시에 눈이 번쩍 뜨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Benedicamus Domino(모 영상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거룩한 장면이 절대! 아니다)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8시에도 겨우 일어나 출근하던 내가, 벌써 43개월째 6시 기상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소한 3년 반은 더 이렇게 살아야 한다(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생각하면 진짜 놀랄 노자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이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한 번도 사고 안 치고 꼬박꼬박 6시 기상을 해 오고 있다는 거. 이거야말로 진짜 Deo gratias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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