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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요즘은 ‘퇴근’ 할 일이 없다보니 퇴근길을 경험한 지도 오래 되었다. 뭐 학기중에야 학교 안에만 있으니 퇴근의 개념이 없고(그나마 학교 안에서는 어디 있든 10분 이내에 귀가할 수 있다), 방학 중에도 대부분의 일정이 명동 안에서 소화되니 저녁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돌아올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요근래 이런저런 일들과 약속들 때문에 멀리 나갔다가(그래봤자 서울 안이지만) 저녁쯤 귀가하는 일이 몇 번 생겼다. 8월 중순까지 워낙에 바빴던 터라 약속이 몰렸는데, 덕분에 연일 약속이 잡히는 통에 마치 예전에 회사 다니던 것처럼 ‘퇴근’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거 며칠 했다고 퇴근 운운 하는건 좀 오바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퇴근 비슷한 것들을 하다 보니 예전 생각도 나고 그러더라.

 (알바를 포함해) 일이란 걸 처음 해 본 게 대학교 1학년 마치고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퇴근에 대한 첫 기억은 대학교 1학년 때였을게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 전 일이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뿐더러, 동네에서 일을 한 거라 퇴근길이라는 느낌도 별로 안 들었다. 그 후에도 주유소나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주유소는 역시 동네였고 편의점은 남들 다 출근할 때 퇴근하던 기억 때문에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퇴근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
 본격적으로 ‘퇴근길’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첫 기억은 2006년 코엑스에서 알바하던 때인 것 같다. 그땐 오전조를 하면 오후 6시에 퇴근, 오후조를 하면 오후 10시 좀 넘어서 퇴근을 했으니 직장인 퇴근 시간과 비슷했다, 시간뿐만 아니라, 장소 역시 직장인들이 많은 삼성동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직장인스러운’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퇴근을 하면서, 나는 그때부터 직장인의 퇴근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뭐 퇴근길이 별 거 있겠냐만, 하루의 일을 마치고 나서 고단한 몸으로 집에 간다는 점에서 여타의 이동과는 구분되는 퇴근길만의 감정상태가 형성되는 것 같다. 거기다가 해가 뉘엿뉘엿 져 가거나 아예 밤이 된 상황, 혹은 아예 하루가 끝나버린 늦은 밤시간에 버스에 타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자면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퇴근길은 참으로 감성적이다. 어떨 때엔 이미 술한잔을 걸친 말랑말랑한 감정 상태이기도 하고, 어떨 때엔 또 녹초가 되어 이어폰에서 무슨 노래가 나오는지도 모르는(심지어는 노래도 안 틀고 이어폰만 꽂고 집에 온 적도 있다)멍한 상태일 때도 있다. 뭐 이런저런 차이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퇴근길은 감정이 많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퇴근이란 게 막 펄쩍펄쩍 뛰고 그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경우에는 유난히 푹 가라앉아서 퇴근을 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 보면 퇴근길에 야구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신명나게(?) 집에 가는 것 같던데, 나는 그런 건 거의 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만 들으면서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 말고는 뭐 트위터 정도? 트위터도 버스를 탈 땐 잘 안하고(멀미가 났다), 지하철로 집에 가는 경우에나 가끔 하곤 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약간은 멍한 상태로 버스 좌석에 널부러진 모습. 그게 내가 퇴근해서 집에 가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 같다. 뭐 엄청 신나거나 그런 거 없이 음악 좀 들으면서 집에 가니, 자연스럽게 감성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거기다가 내가 퇴근길에 감성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집에 가면 ‘아무도 없다’ 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이건 아까 이야기했던 아주 예전의 퇴근길에 대한 별다른 감정이나 기억이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땐 집에 가면 누가 있었거든. 근데 코엑스에서 알바하던 때부턴,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 자취를 했었으니. 당시에는 아무 느낌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돌이켜 보니 집에 가면서 기분이 가라앉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혹은 회식자리에서 왁자지껄 하다가도 집에 가면 아무도 없다는 것. 그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썩 좋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집이 적막한 게 싫어서 집에 들어가면 티비부터 켰었으니, 그런 ‘아무도 없는 집’에서의 영향이 알게모르게 꽤 있었나 보다.

 아무튼 그래서 퇴근길은 참 감성적이었다. 글감도 막 떠올랐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막 떠올랐다. 뭐 물론 집에 가면 글감이고 뭐고 널부러져서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잠드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래서 그 감성과 사색의 시간이 결코 생산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시간에는 느끼기 힘들었던 독특한 느낌을 가진 시간이었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어쩌면 평생 그런 퇴근길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된 처지에서, 그때 느꼈던 퇴근길 특유의 느낌은 참 아련하게 다가온다. 난 또 이런 감정을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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