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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으로 살아왔다는 것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간 2008년부터 4년이 넘는 시간 나는 직장인으로써 살아왔다. 그러다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해서 학교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제 막 스무 살 남짓 된 친구들과 부대껴서 살다 보면 내가 나이차이로 인한 세대차이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살아왔던 직업이나 환경적으로도 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친구들과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는 꽤 오랜 기간 인터넷업계에 있으면서 온라인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어린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거나 이용하는 분위기들을 보면 나랑은 코드가 약간 다른 것을 느낀다. 분명 내가 고리타분하게 인터넷 문화를 ‘배워서’ 향유하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들이 하던 짓(?)을 나도 분명히 해왔었는데 뭔가 다른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격차를 느끼곤 한다.
그런 차이들을 느끼다 보니, 결코 길지 않게 경험한 직장생활이란 게 나를 굉장히 크게 바꾸어놓았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물론 4년여간의 시간을 짧다고만 표현할 수는 없지만, 4년된 5년차 정도면 아직 초년생 취급을 벗을 만한 연차는 아니긴 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직장생활이었음에도, 그 전에 20여년간을 ‘돈 쓰는’ 사람으로 살아오다가 ‘돈 버는’ 사람으로 바뀌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 상당했던 것 같다.
‘돈 버는 사람’으로써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변했던 건 역시 돈에 대한 가치인식의 변화였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돈 버는 사람이 아님에도 예전 돈 벌던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잔돈을 잘 챙기지 않거나, 아주 비싸지 않은 물품을 부담 없이 생각해 계속 ‘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월급을 받던 시절에는 이 정도를 지출해도 곧 다시 수입이 발생해서 채워주지만, 지금은 정기적인 수입 없이 쌓아놓은 돈만으로 생활하는 처지라서, 무의미한 구매를 줄여야 하는 처지인데도 그런 것들이 쉽지가 않다. 좋게 이야기하면 ‘통이 커진’ 건데, 앞으로도 한참 수입이 없을 형편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경우가 있다.
또 한 가지 변했던 건 내가 돈 안되는 일, 취미생활에 소홀했었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는 인터넷에서 쓰던 별명이 ‘헛짓꺼리’ 였을 정도로 쓸데없는 일이나 취미로 즐기는 일들에 심취했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하지만 지금 와서 그것을 한참 향유하다가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런 분야에 대한 내 지식이 보잘것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 젊은 친구들이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나 삼촌뻘 되는 사람들이 이야기에 잘 끼어들지 못하고 멀뚱멀뚱해 있는 것마냥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지식이 없다. 이건 내가 그 동안 그런 것들을 잘 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다 보니 잊어버리고 만 것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분명히 예전엔 줄줄 외고 다녔었던 것들인데,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들이 많다.
그러고 보면 4년간 너무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해서 살았었다. 그게 싫어서 중간중간 회사를 관두고 자유인처럼 살려고도 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일터로 돌아가야만 했다. 회사에 있으면 뭔가 자유롭게 일을 하긴 하지만 매여 있는 몸이라 다른 것들에 신경 쓰거나 즐길 여유가 없었고, 야근이나 휴일근무 이외에도 사람 만나고 일 이야기 하고 하다 보면 예전처럼 집구석에서 게임이나 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보면서 쉬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니 기가 막히지만, 이제 슬슬 나도 인생무상이니 하는 소리를 지껄일 때가 된 것 같다. 그때 그렇게 열정적으로 챙겨보고, 레벨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몰두했던 그것들이 이제 이야기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기억 저편에만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니 좀 허무하기도 하고 회한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것들은 당시에 즐겁게 즐겼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겠지 하고 위안을 삼아 보지만,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너무 ‘멋있는 비즈니스맨’ 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살았었던 것 같기도 해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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