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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공포증

세상은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경쟁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사실 내가 진짜로 경쟁을 싫어하는건지, 아니면 그냥 지는 걸 싫어하는건지 나도 헷갈리기는 하다. 근데 지는게 싫든 경쟁이 싫든 나는 어쨌거나 그 이유 때문에 경쟁을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한다. 이게 경쟁을 싫어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난 경쟁이 싫다.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살다 보면, 경쟁을 당연한 삶의 원리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좀 의아하다고 여기게 될 때가 있다. 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지난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사태가 기억이 난다. 뭐 나야 그사람들이 정규직이 되든말든 상관없는 사람이어서 ‘고용보장 받으면 좋겠네’ 정도의 박애주의적인 태도로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인국공 사태에 분노하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것도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직접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인국공 사태가 철없는 몇몇 이들의 배배꼬인 생각이 아니라 생각보다 보편적인 반대정서에 부딪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인국공 사태에 분노했나? 내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할 수가 없으니 넘어가고, 내가 만난 ‘인국공 사태 분노자’ 들을 살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경쟁적인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한마디로 그들은 전부 공무원이었다. 사실 공무원 시험을 보러 저렇게 죽자사자 공부하는 사람들 역시 나는 이해가 잘 안 된다(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이해를 못한다는 소리다). 어떻게 남들보다 1점 더 받으려고 저렇게 몇년씩 공부를 하지? 경쟁을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는 1점 모자라 떨어지는 시험을 붙기 위해 몸 상해가며 하기싫은 공부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는 방법을 택할 것 같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분들이 잘못되었다는 게 결코 아니다. 나는 경쟁이 싫은 사람으로서 경쟁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택하겠다는 것 뿐이다. 경쟁을 피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 비록 경쟁을 이겨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작다 하더라도.

아무튼, 그런 초 경쟁적인 시험을 통과해서인지 그들은 경쟁을 통하지 않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무혈입성’ 하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나는 여러 뉴스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수백 수천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하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그런 절차 없이 승리의 결과물을 얻게 될 수많은 사람들이 좋게 보였을까? 여전히 나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그렇게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왜 분노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로 내 ‘경쟁 공포’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내가 경쟁을 싫어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은 별거 아닌 것들도 많다. 술게임을 하면 이기려고 발악을 하기보다는 그냥 술 먹지 하면서 패배자의 위치를 받아들여 게임을 김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무슨 대항전 같은 걸로 축구 같은 걸 하면 (어차피 잘하지도 못하지만) 무기력한 모습으로 시간을 때우며 승리를 갈망하는 팀메이트들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어렸을 때 오락실을 그렇게 다니면서도 그때 한참 핫했던 대전격투게임은 그렇게도 못했던 내 모습을 보면, 경쟁이 삶의 원리이자 즐거움인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통찰 아닌 통찰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난 경쟁이 싫다. 상대평가의 시대에 나만 만족하면 됐지 하는 삶을 살아서는 결코 윤택한 삶, 자랑하면서 부러움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삶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을 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의 위협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경쟁이 필요없는 세상으로 왔다. 물론 여기에서도 잘나가는 신부 못나가는 신부 비교는 늘 있고 나름대로의 경쟁과 줄세우기도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서는 내가 경쟁에서 뒤떨어진다고 해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필요는 없고, 사람들에게 경쟁이 삶의 원리라고 떠들지 않아도 된다. 비교우위가 아니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공동선의 상태를 이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난 내 할일 하면서, 고만고만한 보통 신부로 살아가고자 한다. 경쟁이 싫다는 거지 할일 못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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