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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글쟁이

어쩌다보니 거의 매일 글을 쓰고 그 글을 여러 사람들에게 읽으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읽기 위한 글이니 정통 글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매일 2천 자 가량의 글을 쓰면서 살아가니 어느 정도 글쟁이 비슷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나는 직업적 글쟁이가 된 것이다.

예전에 어떤 글에서 직업적 글쟁이들은 마감이 코앞에 닥치면 없던 글빨도 솟아나는데 나는 그런 게 아니니까 마감이 다가와도 글을 못 써서 헤맨다는 투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해도 마감이 코앞에 닥치면 기적적으로 좋은 글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새벽 두시에 쓴 글도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몇 차례에 걸쳐 깨달은 다음 ‘초보 직업적 글쟁이’로서의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 내가 마감이 닥쳐도 글을 못 쓰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신학교 입학 초반에 내 특기를 ‘짧은 내용을 길게 늘여쓸수 있다’는 걸로 어필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확실히 그랬다. 보고서가 쓸 게 없어도 어영부영 지껄이다 보면 분량은 금방 채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뻥튀기된 글이 꽤 그럴듯했다. 나는 이렇게 꽤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신학교에서의 7년이 지나고, 7년 동안 철학과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배웠다’는 표현을 쓰기엔 너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소박하다) 이제 더이상 아무 소리나 지껄여서 분량을 뻥튀기하는 스킬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뭐 이바닥의 글이 너무 난해한 탓에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 그런 글에는 일종의 ‘혼’을 담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열 줄의 글을 한 줄로 줄일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글이 아닐까. 온갖 미사여구와 수식어를 갖다 붙여서 한 줄짜리 글을 열 줄짜리로 만든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한 줄의 내용만을 받아들일 뿐이다. 더군다나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은 확실한 ‘청자’가 있는 글이다. 글을 쓰고 읽으면 바로 반응이 온다. 쌉소리를 써서 분량을 채우면 잠은 잘 수 있지만, 다음 날 읽고 나서 영 개운치가 못하다. 사실 반응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찜찜하기도 하고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는 자책 같은게 든다.

마음 속에 채워진 게 없는데 글을 쓰는 건 참 어렵다. 계속 글을 쓸 거리를 마음 속에 채워 넣어야 하는데 영양가 있는 건 채우지 못하고 하루종일 유튜브나 보면서 낄낄대고 있으니 이미 바닥난 밑천이 채워지지 않아 조급한 마음만 든다. 그래서 다른 글쟁이들은 늘 자료조사를 하고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각해 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나도 ‘자료조사’를 해야 하는데 정작 하지는 않고 해야지 해야지만 하다가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 근본 없는 글쓰기를 하고 허겁지겁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뭐 사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도 해야지 해야지 하는 소리의 일종이니. 이런 쌉소리 집어치우고 얼른 내가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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